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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by 존 에버라드. 언어를 알아야 북한을 이해할 수 있다.
    경제와 세계/관련정보 2015. 5. 25. 15:32

    북한에 갔었던 서양인들의 다른 여행기 방문기 체재기 등과 다른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에버라드가 한국어를 안다는 것이었다.

    한국어를 모르면서 북한에 백날 있어봤자 알 수 있는 건 영어교육받은 특별계층의 일원인 당에 충성하는 공무원들이 필터링한 정보들 뿐이다.

    에버라드의 책에 언급된 다른 외교관들 중 일부는 북한에서 정말 하는 일 없이 지냈다.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볼링하고 스스로 유급휴가라고 말하는 외교관도 있었다고 한다. 의욕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말을 모르는데 무슨 정보를 얻으리



    다른 나라에서는 다 하는데 북한에 체재 중인 사람들만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북한 사람들이 다니는 식당에 드나드는 것이다. 남한에서 올라간 사람들은 한국인이라는 특수성때문에 부자유스럽고, 비교적 덜 통제하는 제3국 외국인들은 말이 안통하기도 하고 권한이 부족해서 못다닌다.


    여행이나 해외에 머물면서 그 나라를 알려면 현지인들이 먹는 식당에 가보는 건 기본인데 존 에버라드는 북한에서 그걸 할 수 있었다. 일단 특수신분인 외교관이었기 때문이고 남한에서는 언론 인터뷰도 상당부분 한국어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의 어학실력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에버라드 말로는 자신보다 더 한국어를 잘하는 어느 나라 외교관은 가족이 고국에 돌아간 휴가동안 매일 새로운 식당에 다니곤 했다고 한다



    한국어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다른 서양권 인사들이 북한에 대해 쓴 것들은 말을 모르고 표정이나 태도로 추측하고 오해한 것도 많았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아무데도 못 나가게 한다더니 그렇지도 않다는 게 작은 충격이었다. 사실 평양주재 외국인들에게 약간의 자유는 허용되고 있었다. 못 나가는 건 한국어를 못하니까 스스로 겁먹고 못다니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북한 체재 기록 중 기억 나는 건 예전에 읽었던 기 들릴의 만화 평양이 있다.  재미는 있었지만 기 들릴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보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물론 만화가라는 점에서 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기 들릴의 만화는 버마에 대한 것도 있는데 그게 평양 만화보다 더 나았던 것 같다.



    어쨌든 에버라드의 책은 인간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공적 신분의 외교관이 된 희소한 경우라서 굉장히 새로운 게 많았다. 한국어를 어느정도 안 상태에서 다른나라도 아닌 북한에 주재해 있으면서 더 한국어를 배워 깊은 관찰을 위한 언어적 장벽이 낮았다.



    그가 관찰한 것들 중 재밌는 게 있었는데 북한주민들이 생각보다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그 동안 계속되는 남북경색과 북한의 중국의존도가 깊어지면서 혹시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 북한이 동북4성이 되면 어쩌냐 그런 우려의 소리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북한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이 너무 큰 것 같다.


    물론 이 민족주의는 미국과 소위 미제앞잡이라고 북한이 인식해온 한국을 해방시키겠다는 북한식의 관점에서 생긴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강해진 민족주의는 북한이 중국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태도를 갖게 만든 것이다. 만일의 사태가 생겨도 중국에 흡수되기는 어려운 사회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또한 사업이나 기타의 관계로 북한을 오가며 북한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도 나빠서 북한인들에게 더 나쁜 인상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통일이 된 후에 남한인도 북한인에게 행하기 쉬운 태도가 될 것 같아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북한이 달라질 수 있을까? 중국이 몇십년만에 급격히 변한 것 보면 북한도 가능하지만 북한은 중국같은 촘촘하고 체계적인 조직이 국가를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통치자 1명에게 달린 왕국이다. 최대한 불안정하지 않게 왕국과 한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왕국의 기존질서를 어디까지 존중해줘야할까? 정말 복잡하다.



    이 책을 보면서 북한에 대한 생각을 여러가지로 해보게됐다. 사실 한국인들은 북한의 존재를 거의 항상 잊고 있으면서 아예 제끼고 모든 상황을 생각하는 게 버릇이 되어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은 해결해야할 문제이자 앞으로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인구가 줄어들고 출생률이 낮은 남한만으로는 미래를 돌파하기는 어렵다.



    냉정하게 계산적으로만 생각해보자. 비용이나 사회적 혼란때문에 통일하게 되면 불이익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북한을 누가 가져야 하나 생각해보자. 그 땅과 인구, 자연자원 등을 고스란히 남이 가지게 줄것인가 아니면 한국이 소유할 것인가? 물론 북한을 자원으로만 취급하는 건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자원으로 생각해보는 관점도 필요하다. 불이익이냐 이익이냐로 본다면 통일비용을 들여 자원을 구입하는 것이고, 일시적으로 비용이 크지만 장기적으로 계속적인 이득을 가져올 자원을 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모두.



    그러나 이런 자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북한과 갑자기 통일되는 일은 남한 북한 모두에게 재난이 될 것이다. 북한은 충분히 오래동안 독립적인 국가로 천천히 변할 기회를 가져야한다. 그렇지 않고 무너지면 무너지는 북한이나 그걸 떠안을 남한이나 한동안은 제 궤도에 오르기 어려울 것 같다.



    정말 골치아픈 문제다. 실질적인 이득을 위해서는 북한의 왕조체제를 한동안 인정해주는 게 가장 안전한 일일지도 모른다. 독재자가 자신의 안전보장이 된다면 점진적 변화를 받아들여 시행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협조해도 안전보장이 안된다면 독재자는 도박하려고 들 테니까. 정말 골 아픈 일이다. 북한도 오락가락하지만 북한에 대한 미국이나 한국의 입장도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누구도 상대에게 앞으로 이런 경로로 변화해가자 라는 제의를 서로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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